* Prolog

지금부터 연재하게 될 이야기는 저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추억을 이야기로 풀어본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를 굳이 설명하라고 한다면, 누구든 마음속에 잊지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 쯤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며, 잠시 쉬어가는 삶의 여정 길에 어떤 방법으로든 그 기억을 반추해 보려는 시도를 한번쯤은 해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오래 묵었던 기억의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봅니다.

아마도 그런 시도가 기억 저편의 잔영을 정리해 줄 것이라 믿으며...

누구나 저처럼 젊은 시절의 감추고 싶었던 추억이 있는 분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중년의 뒤안길에 잠시 뒤돌아보는 추억여행이 되어주기를 희망해 봅니다.

◇ ◇ ◇

나이 마흔이 넘도록 한눈 한번 팔아보지 않은 사내가 있다면... 난 그분 발밑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그러니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아내와 난 십여 년이 넘도록 열심히 살아왔다. 둘 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어렵게 시작한 결혼생활, 사글세로 시작한 신혼생활이 점점 살림이 붙고, 맞벌이 덕택에 남들보다 내 집장만도 일찍 이룰 수가 있었다. 

어차피 사랑 하나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었기에 모든 어려움도 문제가 되질 않았다.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가 없다는 것.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는 서로 아쉬움이 없었다. 아이도 크면 곁을 떠날 것이고, 결국 둘만 남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답게 그 날을 함께 맞이하자고 다짐까지 하였으니...

그러나 그런 우리 사이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으나 작은 일에 부딪치기 시작하고, 서로의 집안일에 서운해 하는 일이 종종 생기기도 했다. 특히 장남인 나로서는 본가의 일에 대해 알게 모르게 많은 원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시댁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을 마음에 두고 있던 아내는 소리 없는 원망이 있었으리라.

난 편집증적으로 맹목적인 것에 집착하는 성격이다 보니 좋으면 대책 없이 좋아야 하고, 싫으면 이유 없이 싫어하는 성격인 탓에 왠지 모르게 서로의 집안일에 계산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견디지를 못했다. 가계가 쪼들려도 처남이나 처제가 놀러오면 아내 몰래 일이십 만원이라도 집어줘야 했고, 어머니가 여행 간다고 하면 아내 몰래 별도로 용돈을 더 드리고는 했다.

친구라도 찾아오면 밤늦도록 술판을 벌이다가 밖에 나가 2차, 3차로 이어지기가 일쑤였다. 이런 남편의 행동을 어느 아내가 좋아하겠는가, 그런 나의 행동에 대해 아내는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지만, 난 원칙을 정해 경우에 맞게끔 인간관계를 대하는 것이 숨 막힌다고 아내 말을 무시해버리기 일쑤였다. 

여러 번의 대화기회를 갖았지만, 서로의 골만 깊어질 뿐 이해심하고는 거리가 먼 단절로만 치닫고 있었다. 결코 우리만은 여느 부부처럼 인상 쓰며 서로 싸우지 말자고 젊은 시절 약속했건만, 심지어는 서로의 집안에 대해 헐뜯는 경우까지도 벌어지고,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큰소리까지 치며 다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아내나 나나 귀가시간도 점점 늦어지게 되고, 일주일이면 삼사일은 술에 취해 들어오기가 일쑤였다. 자연히 집안일이며 직장 일에 소홀함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렇게 계속되다간 정말 무슨 일이 나겠다는 불안감만 커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전날의 말 한마디 없이 냉랭했던 아내와의 시간이 미안해 모처럼 일찍 집에 들어왔지만 아내는 외출 중인지 텅 빈 집안을 멋쩍게 지키고 있어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사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난 간간이 시계만 쳐다보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TV 드라마를 밤늦도록 시청하고 있었다. 그러다 밤 열두시가 다 되어 가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내가 나를 배려했다면 최소한 양해를 구하는 전화 한 통 정도는 진즉 있었어야 했는데, 이건 분명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자존심 상하게 전화 해볼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 지금 나하고 해보자는 거야?’

이미 심사가 꼬일 때로 꼬인 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속 좁은 생각에 어떻게 응징할지 소심한 복수(?)에 골몰하다 아내에게도 똑같이 빈집에서 걱정을 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무엇이라도 생각난 듯이 베란다를 뒤져 낡은 낚시가방을 꺼내들었다. 이 낚시가방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품으로, 버리기 아까워 창고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것인데, 묶은 먼지를 털어내니 그럭저럭 쓸 만해 보였다.

그리고는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메모도 남기지 않은 채 집을 나와 버렸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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