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하는 김경욱 서울대 교수

우리 농산업발전에 큰 역할을 해온 김경욱 서울대학교 교수(사진)가 지난달 31일 35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임했다. 김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고, 1981년부터 서울대에서 농업기계 공학분야 교수로 부임해 농기계전문가 양성은 물론 농산업 정책개발과 산업발전에 기여해 왔다. 재임기간 중에는 (사)한국농업기계학회장 역임과 각종 국제학술대회 참여, 국제농산업분야 정책참여 등 활발한 활동과 적극적인 정책참여로 우리 농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교수를 만나 그동안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들을 들어봤다.

농협 최저입찰제, 수익사업으로 변질…정부 조속히 나서야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 인재양성의 보람과 함께 퇴임에 따른 아쉬움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 는데 퇴임 소회가 있다면.

- 농업기계공학이라는 학문분야를 통해 35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많은 분들과 함께 농업기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부분은 큰 보람으로 남는다. 특히 농업기계공학이라는 학문이 우리 농산업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자의 반, 타의 반 우리나라 농업기계화 발전에 참여하게 됐다. 최근 농업기계공학은 범위를 넓혀 바이오시스템 공학으로 그 범주와 영역이 확대됐다. 농축산기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가 모여진 영역으로 발전됐는데, 누가 후임으로 오든 우리나라 농산업 측면에서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전통 농업기계공학은 계속 유지됐으면 한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정책참여를 해온 우리 농산업분야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면.

- 우리 농산업을 선진국 수준의 농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다. 특히 기술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일선 농산업체의 다양한 기술력을 이론적인 바탕 위에 세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업기계화촉진법도 이제는 전면 개정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시대에 맞게 고치고,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도 범위와 요건에 맞게 좀 더 틀을 다듬어 미래지향적인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농업기계화촉진법을 전면 개정한다면 구 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 하나.

- 지금까지는 공급위주의 농업기계화가 기본 틀이었다면, 이제는 공급중심보다는 효율적 관 리와 활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농민이 농업기계 활용을 통해 경영마인드를 높일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꾸고, 자동화, 농민편의성, 공동이용확대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정책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좀더 부연하면 같은 기계라도 연료를 얼마나 줄이는지, 언제쯤 기계를 교체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경영규모에 따른 기계활용을 높일 수 있는지 등의 제도적 뒷받침과 자기책임강화가 뒤따라야 한다. 정부융자 지원도 기종에 따른 획일적인 집행에서 벗어나서 농가의 사업규모에 따라 상한액을 정해 자기책임하에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하도록 해야 책임경영이 가능해진다.

△미래지향적인 농업기계화를 위해서는 농산 업체의 경쟁력강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 산업체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정부에서 도와주고 있는 것이 R&D 지원인데, 회사입장에서 보 면 너무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 예를 들면, 농식품부 과제 중에 국산농기계의 동남아 현지 적응 성 시험을 위해 2년5개월 기간으로 사업비 15억원을 책정해 공모했는데, 정부의 R&D 규정에 따르면 기업부담금이 있고, 기업에 주는 위탁연구는 전체 연구비의 얼마 이상은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

정부에서 기업을 도와주는 연구사업이니 기업에도 일정부분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기업입장에서는 비용을 투자해서 금방 효과가 나타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연구사업이라는 것은 당장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기술개발이 필요한 어려운 기업일수록 당장 투자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굳이 R&D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R&D 지원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와 함께 산업체들이 생산의욕을 가지고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기계화율이 떨어지는 밭작물농기계에 대한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있지만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수요를 창출해주는 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정책으로 지자체 기술센터가 하고 있는 임대사업을 활성화시켜 고정된 수요가 확보될 수 있도록 보장을 하고, 대신에 정부는 기업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철저한 품질관리를 담보하는 쪽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농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농기계 가격거품과 과당경쟁이 오래전부터 문제가 돼 왔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없나.

- 관주도의 획일적인 농기계공급 지원책이 이런 화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 추진하고 있는 가격표시나 원가자료제출도 단지 임시방편일 뿐 또 다른 부작용만 불러 올 것이다. 이제라도 패러다임을 바꿔 농가 자기 책임하에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농가 사업규모에 맞는 상한액만 정해 두고 자율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시장 경제논리에도 맞다. 이와 함께 농기계 유통구조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는 농협의 최저가격 입찰제를 개선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언뜻 농협의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산업논리에 따른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의 영업팀은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익이 나지 않아도 매출을 발생시켜야 한다. 경쟁사와의 시장점유율 경쟁관계에 있다면 더욱 죽기 살기로 이전투구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영업의 생리다.

농협은 거대자금을 쥐고 우월적 지위를 통해 교묘하게 이점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최저가입찰제가 최저가로 농기계를 받아 농민에게 최저가로 돌려주고 있기 때문에 가격거품을 막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최저가 경쟁으로 인한 품질저하의 폐해가 농민에게 돌아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는데만 혈안이 된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 없다.

농협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는 농식품부가 나서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도 왜 정부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농기계은행사업은 사업목적이 농민의 농기계구 입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환원사업의 성격임에도 농협의 수익사업으로 변질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익 사조직으로 변질된 농협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정부가 나서야 한다. 농협 임대사업을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최저가입찰제, 중개판매형식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농기계 가격거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퇴임 후의 계획은.

- 그동안 주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우리 농업기계 공학분야 학문연구를 정년퇴임때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보잘 것 없는 지식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의 경험을 재능기부 차원에서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특히 수요정체에 빠진 국내 농기계업체의 해외수출과 후진국의 농기계산업 발전에 작 으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큰 보람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농업기계화 전문가(윤진하·박재복·사공문·김용택)들과 함께 ‘에이지엠 시스템즈 앤 엔지니어링(AGM S&E)’이라는 법인설립을 완료하고, 국내외 증가하고 있는 농업기계화 정책개발과 농기계 엔지니어링 서비스 수요에 부응하려 고 한다. 다루게 될 주요업무는 국내외 농업기계화 정책개발, 농기계 기술개발, 농기계 시장조사 등을 통해 최고 수준의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선태규  midas0718@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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