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적 접근위한 로드맵 필요‧‧‧북측 요구사항 수렴이 변수

- 경협모델 추진시, ‘제2의 개성공단’ 방식 인프라 구축해야

2008년 이후 끊겼던 남북 농기계교류협력이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남겨두고 있어 아직 남북교류에 대해 관망적인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이미 이해관계가 첨예한 각 산업부문별로는 7조원 이상 쌓여있는 남북협력기금 선점을 위한 정중동(靜中動)의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다. ‘먼저 먹는게 임자’라는 기금확보가 아니더라도 수요가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농기계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지속가능한 경제협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남북 농기계교류협력 재개를 전제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들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註>

◇ 남북 농기계교류협력의 태동과 배경

북한의 식량사정이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한 1995년부터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이 시작됐다. 또한 각국의 정부, NGO 등 국제사회의 대북지원과 함께 남한도 정부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대북지원에 나섰다.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규모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통계가 확인된 부분만 23억2431만달러로 실질 지원규모는 30억달러가 훨씬 상외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1995년부터 2004년까지의 정부‧민간 지원규모만 11억6071만달러(1조3000억원)로 파악되고 있고, 그중 정부지원이 7억3594만달러(63.4%), 민간지원이 4억2477만달러(36.6%)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후 2008년 대북지원 중단시까지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이 활발했던 점을 감안하면 지원규모는 16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전체 대북지원액 중 식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식량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한 단기적 식량지원보다는 식량증산을 통한 식량자립기반 마련을 위해 비료, 농약, 농자재와 이앙기‧콤바인‧경운기 등의 농기계지원도 민간단체와 지지체를 중심으로 대북지원이 이뤄졌다.

북한의 식량자급을 위해서는 이모작 농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인력에 의존하다보니 수도작 이앙작업과 수확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생산량은 1995년 413만톤, 1996년 345만톤, 1997년 369만톤에서 2000년 422만톤, 2014년 480만톤, 2017년 471만톤 등으로 다소 회복은 되었지만 현재도 연간 100만톤 이상의 식량이 부족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북한의 식량생산확대를 위한 농업기계화를 위해서는 트랙터‧콤바인‧이앙기 등의 농기계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지원된 농기계의 경우에도 부품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수리보수가 쉽지 않아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나마도 트랙터는 전략물자로 지원대상에서 배제되고 있어 작업기 활용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 남북 농기계교류협력의 성과

정부주도의 대북지원에서 2000년 남북정상의 6.15선언을 계기로 민간단체와 지자체의 대북지원과 협력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민간차원의 대북 지원사업은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북측 민화협)’를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북측이 인정하고 있는 30여개의 민간단체 중 농업분야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농기계), 월드비젼(온실지원), 남북농업발전협력민간연대(씨감자), 굿네이버스(사료공장), 농협중앙회(종자), 한국JTS(농자재), 통일농수산사업단(이모작지원) 등 10여개의 민간단체가 각각의 관심분야별로 지원에 나섰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단체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경운기(908대), 콤바인(135), 이앙기(66), 파종기(62) 등의 농기계와 함께 농기계 사용빈도가 높은 평양시 사동구역, 평안남도 대동군, 황해남도 신천군 등에 농기계수리공장 건립지원을 통해 지원농기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2005년에는 동양물산기업(주)의 지원을 받아 평안남도 강서군에 ‘금성‧동양 농기계공장’을 건립하고 이앙기, 콤바인 등의 공동생산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북한과의 농업개발사업으로 추진된 금성‧동양 농기계공장은 남북 농기계교류사업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단순 농기계지원사업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사업모델로 발전시켜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값싼 인건비와 우수한 노동력을 접목해 경쟁력 있는 농기계를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사업이 본 궤도에 접어들기도 전에 남북교류 중단조치로 사업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남북 농기계 교류협력사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업모델로 제시된 평안남도 강서군의 ‘금성·동양 농기계공장’.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값싼 인건비와 우수한 노동력을 접목해 경쟁력 있는 농기계를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사업이 본 궤도에 접어들기도 전에 남북교류 중단조치로 사업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사진은 2005년 9월 14일 남북관계자가 함께한 금성·동양 농기계공장 준공식 모습.

◇ 농기계교류협력의 문제점

대북 농기계지원은 대부분 북한의 요청에 따라 진행되는 방식이 많기 때문에 체계적이 못하고 민간단체와 지자체별로 제각각으로 운영되어 중복되거나 단발성으로 그치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남한이나 북한내의 실무적인 단일 교섭창구가 없고, 문제가 생겨도 중재‧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어 전략적‧단계적으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와 함께 지원되는 농기계가 북한실정에 맞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지 못했다. 북한의 경작지는 230만㏊로 추정되며, 관개시설이 설치된 면적은 57%인 146만㏊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북한의 경지면적 중 논은 61만㏊(32%), 밭은 130만㏊(68%)로 나타나고 있으며, 경지정리가 안된 논과 밭이 많고 특히 밭의 경우에는 산간지역을 개간한 지역이 많아 경사도가 매우 심한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에 북한 지형과 농법을 고려한 농기계 선정이 먼저 고려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측내에 농기계를 생산기지화 하는 협력사업의 경우에는 그 어려움이 더 크다. 투자목적으로 북한내에 설비‧원자재를 투입해야 하는 기업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가장 큰 장애요인인데 정치적 이슈에 따라 일희일비한다면 사업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미 2006년5월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에서 취합한 개성공단 수요조사에서도 6개 기업만이 신청을 했고, 결국 사업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입주를 포기한 사례가 있다. 또한 한미간의 전략물자 및 기술보호에 관한 협정으로 인해 북한으로 반출해야 할 핵심부품들이 제한을 받을 수가 있고, 원산지표시문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자재의 원할한 수급문제나 생산활동에 필요한 인프라 확보도 선결해야 할 문제다.

◇ 정부의 대북지원 정책방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시 나온 경제협력 사안으로 개성공업지구 2단계 개발착수, 남포 특구‧협력단지 개발이 포함돼 있다. 또한 이번 판문점회담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지도’에는 해주‧남포‧개성‧원산 등의 경제특구 제안이 담겨있다. 즉 대북 지원정책의 기조에는 경제협력을 통한 산업활성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대북 농업지원과 관련해 식량증산을 위한 농기계 생산기지화 추진시 탄력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입장에서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 담긴 지상과제지만 남한이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북측의 안정적인 식량생산기반 마련을 위한 농업기계화 추진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농기계보급을 위한 생산기지화는 필연적으로 따라가야 할 절차다.

정부는 그동안의 대북 협력사업이 체계적인 로드맵 없이 추진된 부분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다. 통일부나 각부처별 대북 협력사업에 대한 기본계획을 아직 내려 보내지 않고 있다. 관례상 북미 정상회담 이후로 일정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7조원 이상 쌓여있는 남북협력기금을 둘러싼 이해관계인의 성급한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그러나 정책개발 이전에 선제적으로 남북 농기계교류협력에 대한 정책제안이 이뤄질 수 있다면 농기계산업발전에 좀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농기계 교류협력 추진과제

무엇보다 대북 농기계 교류협력사업을 총괄할 수 있는 민관협의체 성격의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정부 창구를 일원화하고 산학연이 참여하는 협의조직 구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개발과 로드맵 관리 등 중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접근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

콘트롤타워의 장기 로드맵에 따라 다양한 사업들이 추진될 수 있다. 대북 농기계지원의 경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단순 일회성의 농기계지원이 아닌 기술교류와 인적교류가 결합된 종합지원 프로그램 가동을 통해 협력사업의 질을 높이고 정량평가 관리가 가능해질 수 있다. 또한 남북 농기계 협력사업 강화를 통해 남북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값싼 인건비와 우수한 노동력을 통해 경쟁력 있는 농기계생산과 수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장기침체에 빠진 우리 산업의 수요확대와 산업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진  jsj@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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