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수익구조 마련이 최대 과제…정부와 정책개발 모색해야

농기계유통인들의 숙원이던 ‘전국농기계유통조합’이 공식출범했다. 그러나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극복해야 할 난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농기계 유통업체는 농기계 대리점을 비롯해 수입판매대리점, 작업기대리점, 유통겸업 생산회사까지 족히 1,000여 곳이 넘는다.

농기계유통인들은 우리나라 농업기계화의 산증인으로, 농민과의 농업현장 최접점에서 농기계를 보급하며 우리 농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자처해 왔다. 그럼에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이 없어서 그동안 떠돌아다니며 더부살이 아닌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다 지난해 점점 심화되고 있는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의 최저가입찰제 여파로 채산성이 극도로 나빠지고, 수입산 농기계의 시장잠식에 위기감을 느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합결성을 추진하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달 12일 창립총회를 통해 공식출범하며 얼굴을 알리게 됐다.

이번 농기계유통조합의 시작은 지난해 12월8일 대전 유성의 동국제강 연수원인 후인정에서 개최된 ‘농협 임대사업 저지를 위한 5대 전국대리점협의회’자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자리 에서 각사 대리점협의회는 농협 임대사업 저지를 위해서는 조직체 결성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이어 올해 2월과 3월, 도 단위 대리점협의회와 접촉하며 설립 취지와 공감대를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4월27일 조합인가와 법인등기를 완료하며 법적지위를 갖췄다. 창립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그럼에도 앞으로 갈 길은 더 멀어 보인다. 농기계유통 조합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고려돼야 할 선결조건과 과제들을 살펴본다.

△ 우리나라 농기계유통조합의 발자취

이번 농기계유통조합의 결성은 우리 농업기계화 역사에 있어서 세 번째의 발걸음이다. 우리나라 농기계유통 발전사에 있어서 농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이다. 농협이 유통에 직·간접으로 참여할 때마다 대리점은 갈등을 겪어 왔다.

최초의 농기계유통조합은 1980년대 초, 농협이 농기계회사로부터 직접 농기계를 공급받아 판매에 나섬에 따라 갈등관계가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농협이 대리점과 경쟁판매에 나서며 대리점의 사업이 위축되자, 홍석주 대동공업 안성대리점 대표를 중심으로 윤창환(LS, 당시 금성전선) 김용서(국제 수원), 서평원(아세아 논산) 등이 모여 이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시도됐다.

당시에는 인가를 필요로 하는 조합의 형태가 아니라 일반 사조직으로 결성된 ‘농기계판 매협회’라는 이름으로 조직망을 갖춰 추진됐다. 그러나 농협에 제품을 공급하던 농기계 회사들의 반발에 부딪쳐 더는 활성화되지 못했고, 농협이 판매에서 손을 떼면서 이슈가 사라짐에 따라 결속력이 떨어져 명목만 유지하다가 홍 대표의 폐업과 함께 농기계판매협회의 존재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두 번째의 농기계유통조합 설립은 1990년대 말,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농가부채를 줄이기 위한 종합금융정책이 농기계판로를 막으면서 촉발됐다. 농기계구입자금을 시설자금으로 분류해 전년도에 미리 신청한 경우에 한해서만 정부지원을 해주도록 함에 따라 농기계수요가 줄어들자 각사 대리점협의회를 하나로 뭉치게 했다. 당시 정삼태(대동 용인), 엄기선(국제 용인), 조철래(LS전선 함안), 서평원(동양 논산), 이기상(아세아 성주) 등 각사 협의 회장이 주축이 돼 여의도 국회 앞 항의집회 등 전국단위 조직력을 과시하며 2004년 2월 ‘한국농기계유통협 회’를 창립했다.

당시 김대봉(국제 남 양주) 대표를 초대 협회장으로 추대하고 의욕적인 사업을 추진했지만, 언 론사와의 갈등으로 빚어진 송사에 휩싸이며 파행을 겪다 사업비 고갈로 회원들의 불신만 남긴 채 협회를 떠나게 됐다. 그리고 사업비가 바닥난 협회는 유령조직으로 실체를 잃어버렸다. 올해 추진된 농기계유통조합의 설립에 미온적이거나 반신반의 해온 대부분의 대리점주들은 그때의 아픔을 기억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닻을 올리게 된 이유는, 농기계 유통인들이 사지(死地)로만 내몰리고 있는 지금의 농기계 유통환경에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게 되자 옛 기억을 뒤로 하고 다시 한 번 뭉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농기계유통조합의 상생협력 모델

△모든 농기계유통인을 아우를 수 있는 대표성 전제돼야

농기계 유통정책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모든 농기계유통인을 대표한다는 명분논리가 있어야 한다. 이해관계가 맞는 구성원으로만 조직을 구성한다면 대표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일부 구성원만을 대표할 경우, 외부에서 보기에는 갈등관계에 있는 특정 이해집단으로 평가될 소지가 있어 그만큼 발언권의 공신력을 얻지 못한 다. 수입판매대리점, 군소 작업기대리점, 유통겸업 생산회사까지 농기계 유통사업자라면 모두 참여할 수 있어야 대외적으로 대표성 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이해관계가 맞지 않더라도 조합이라는 제도권 내에서 유·불리를 따질 일이다. 제도권을 벗어나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특정 이해집단 간의 갈등구조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왕 문을 개방할 거면 유통을 겸업하고 있는 생산업체까지 전향적으로 끌어드릴 필요가 있다. 세(勢)가 모이면 모일수록 대외협상력이 높아지고, 수입도 확대할 수 있다. 명분과 실리 모두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자립기반 안정화 위한 수익모델 개발필요

무엇보다 조합원의 비용부담을 줄이고 공통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는 수익사업이 전제돼야 참여와 결속을 이끌어낼 수 있다. 조합원의 입회비와 연회비만으로는 안정적인 조직 운영자금을 충당하기 어렵다. 조합원을 500명으로 배가 한다고 해도 년간 연회비는 1억원에 불과해 2명의 상근직원과 사무실 운영경비로도 빠듯하다. 그마저도 모든 조합원이 연회비 납부에 100% 협조적일 경우에 한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 조합원들은 2004년 창립했다가 운영자금만 고갈한 채 사라진 前 조합에 대한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불신이 쌓여도 고개를 돌릴 수 있는 개연성과 위험성이 늘 상존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합의 안정적 수익구조 마련을 위한 추진계획을 살펴보면, 정부사업 이양을 전제로 한 사후관리지원사업, 사후봉사이행 기관지정, 농업기계화시책교육 개최, 조합원을 위한 농기계공동구매, 중고농기계사업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사후관리지원사업, 사후봉사이행기관지정사업, 농업 기계화시책교육 개최는 정부와의 정책파트너로서의 지위자격 부여와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명분사업일 뿐 수익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사후관리지원사업의 경우 사업규모가 210억원이기 때문에 수수료 수입 0.03%를 모두 합해봐야 연간 630만원에 불과하다. 또한 사후봉사이행기관지정사업은 조합원과의 결속력과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안전장치일 뿐 수입사업은 아니다. 중고농기계 유통사업의 경우에도 부지마련과 설비·시설투자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정부 지원없이 불가능하다. 이미 정부의 정책파트너로 ‘중고농기계유통협동조합’에선 집행이 됐기 때문에 중복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기대해 볼 수 있는 사업이 조합원을 위한 농기계 공동구매사업일 것이다. 그러나 작업기업체를 대상으로 한 공동구매사업은 오히려 조합이 미션으로 내세운 건전한 유통질서를 해칠 수 있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공동구매를 빌미로 작업기업체의 과당경쟁유발 및 과다한 수수료 논란은 작업기 업체의 원성을 살 수 있고, 사업주체만 바뀐 또 다른 농협의 최저가 입찰방식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로써는 마땅한 안정적 수익구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정부와의 정책파트너로 끊임없는 정책개발을 통해 수익모델을 찾는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또한 문호를 개방해 모든 유통업체와 유통겸업 생산업체까지 끌어들인다면 충분히 자체사업추진도 가능할 것이다.

△상생협력 강화를 위한 조합의 위상 재정립

조합의 대외활동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이해관계가 상충한 제조업체(농기계조합), 농민(농협)과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상생협력관계로 재정립하느냐에 달려있다. 종합형업체와 대리점은 수십 년간을 ‘갑을관계’로 고착화됐다. 하루아침에 동등한 갑을관계를 요구한다고 들어줄 리도 만무하다. 일반 소비재의 경우에는 유통주체가 생산주체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하이마트·이마트·홈플러스·홈쇼핑 등의 거대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유통업체는 직영체계와 수직계열화를 통한 막강한 구매력으로 제조업체를 이끌어갈 수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하고 개별사업자인 대리점의 경우에는 단일조직으로 조합의 힘을 규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조합을 통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제조업체와 이전과는 다른 관계설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조업체의 최종 소비자인 농민을 등에 업어야 한다.

제조업체의 아킬레스건은 결국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명분에서 조합은 농민의 편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농협은 농민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접근이 어렵다. 농협은 농민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농협의 모든 사업은 농민을 위한 사업이라는 당위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농협의 실체는 한 지붕 두 가족 같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농민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지만, 그를 통해 농협조직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과의 관계설정을 위해서는 농협사업이 결코 농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증을 이의제기자인 조합이 증명해야 한다.

결국 조합이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조합이 농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명분설정이 필요하고, 농협의 관리감독을 관장하는 정부와는 정책파트너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가 장 이상적인 구도는 정책 감독자인 정부를 가운데 두고 농민(농협)과 제조업체(농기계조합), 그리고 대리점(농기계유통조합) 이 삼각구도를 이루는 상생협력관계로 볼 수 있다.

정상진  jsj1234@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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