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뒤덮였다. 1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그 불꽃에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원 하는 마음을 담아 손에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모든 국 가정책의 ‘기둥’이자 ‘중심’인 대통령이 무너져 내려가는 형국이다.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대부분 국민과 정치권은 본래 목적 외에 국정마비에 따른 공백을 우려하고 있다. 정 책추진 주체가 동력을 잃었으니 그와 맞물려 돌아갈 각 분야 정책들이 제 역할을 해낼리 만무하고 그에 따 라 국가 전체가 멈춰버리는 ‘대위기’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 다. 생존권과 직접 관계된 정책분야는 농축산이다. 국민 들의 기본적인 먹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흔 히들 ‘생명산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평시에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급박한 현 시국에 서 제대로 된 정책집행을 기대할 수 있을까.

◇‘최순실 국정농단’에 “국민은 이미 박 대통령 탄핵”… 정책추진 동력 상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국민이 뽑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낱 촌부(村婦)의 ‘꼭두각시’에 불과 했다는 현실이 국민을 참담하게 만들고 있다. 최씨가 무소불위의 ‘인형’권력을 등에 업고 국정을 해치며 잇 속을 챙긴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몸통’이 박 대통령 으로 지목되면서 국민의 분노는 ‘하야’로 모아져 분출되 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1차 사과문에서 “최순실씨 는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 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고 일 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 움을 받은 적이 있다. (대통령)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 연설문은 국민에게 국정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정치행위다. 특히 정책방향을 담고 있어 경제정책 등과 관련한 내용이 발표 전 유출된다 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비리로 연결될 수 있다. 최씨가 연설문에 손댄 것은 권력을 사유화한 것 이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최씨와 그와 연관된 자들의 비리사실이 쏟아지는 것도 ‘연설문 유출’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과문을 통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자신으로부터 비 롯됐음을 인정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 담화에서 “국가경제와 국민 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 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하다”며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다”고 탓을 돌리면서도 직접적으로 ‘잘못’을 인정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가 중대한 범죄행위로 구속 됐고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체포돼 조사받았다”면서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 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본인이 검찰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음을 밝 힌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분노는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타 올라 ‘100만 촛불집회’로까지 이어졌고 “국민은 이 미 탄핵을 결정했다”는 얘기들까지 여기저기서 쏟아지 고 있다. 박 대통령은 2차 담화문에서 “국정은 한시라 도 중단돼서는 안된다”고 염려했으나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탄핵된’  현 상황에서 현 정부 들어 추진된 정책 들이 힘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 정부 농축산정책, 제대로 추진될까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농림축산 정책도 차분히 진행되고 있지만 공무원들의 ‘사기저하’와 함께 근간이 흔 들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정책입안자의 전문성부터 정책자체의 공정성·신뢰성 ·투명성 등이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뜯어고친 ‘국정농단’ 악영향이 정책에까지 암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는 농림축산업 분야와 관련해 △농림축산업 의 미래성장 산업화 △농어가 소득안정망 확충 △농축 수산물 유통구조 개선 △안정적 식량수급체계 구축 △ 맞춤형 사회안전망 구축 등 복지농어촌 건설 등 5개 국 정과제를 집중 추진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박근혜 정부 중점 추진사항의 추진 정도(올해 상반기 기준)’자료에 따르 면 농림축산업의 미래성장산업화 과제는 △생산·유통· 가공·외식·관광 등이 연계되는 6차산업정책 확대 △종자산업 육성, R&D 확대, 식품산업 육성 등 농식품의 첨단산업화 △효율적 분뇨처리, 시설현대화 등 지속가 능한 축산업 육성 △소득증대, 일자리창출, 환경기여, 녹색복지 등 산림부국 구현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농식품부는 이를 기반으로 2013년에는 가축분뇨자 원화 중장기 대책을 마련했고 ‘농업의 6차산업화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2014년에는 지속가능한 친환경축산 종합대책을 수립했고 6차산업 추진의 제도적 기반인 ‘농촌융복합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또 국가식품클러스터 세부사업시행계획을 확정하 고 과학기술기반 창조농업 촉진대책을 수립했다. 2015 년에는 축사시설현대화사업 사후관리 세부계획이 수립 됐고 산림분야 일자리 창출 26만8000개, 도시숲 249 개소 조성 등이 추진됐다. 올해에는 제2차 농림식품 과 학기술육성 종합계획, ICT융복합 스마트 팜 확산 가속 화대책 마련 등이 마련됐고 축산분야 스마트팜 축종이 젖소·한우까지 확대됐다. 농어가 소득안전망 확충 과제는 △재해보험 확대, 사 후 복구지원 강화, 사전예방 강화 등 추진 △쌀고정직불금 단가 인상, 밭직불 품목·지목 확대 등 추진 △농기계 임대사업·농작업대행 확대 및 시설원예 등 고에너지 산업의 절감형 개선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2013년에 농어업재해보험 제도개선 추진계획을 수립했고 농자재산업 종합대책을 마련 해 추진했으며 밭농업직불금 지급대상 7개 품목을 추가했다(감자·고구마·들깨·유채·양파·대파·쪽파). 2014년에는 농산물 생산자를 위한 직접지불제도 시행규정 및 시행규칙을 개정해 논에 사료·식량 작물 재배시에도 밭농업직불금을 지급토록 했다. 2015년에는 이모작 활성화를 위한 들녘경영체 임대 사업 우선지원을 추진했고 동계 논에 식량 및 사료 작물 재배시 밭직불금을 50만원/ha까지 확대했다.

농기계임대사업소는 2013년 293개소에서 2014년 335개소, 2015년에는 379개소까지 확대됐다. 농축수산물 유통구조 개선 과제는 △유통단계 축소를 위한 직거래 등 신유통 경로 확대 △생산자단체 를 통한 유통계열화 확대 △시설현대화 등을 통한 도매 시장 운영 효율화 △수급조절위원회 등을 통한 농산물 수급관리 체계화 등을 세부내용으로 하고 있다. 안정적 식량수급체계 구축 과제는 △주요곡물의 자 주율 목표설정 및 국내외 비축 확대 △식량안보 모니터 링 및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우량농지 보전, 사료작 물 등 생산 확대 △해외 식량공급기반 조성 해외농업 지원 강화 등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 농식품부는 2013 년에 해외농업개발 활성화 방안을 수립했고 주요곡물 자주율 및 자급률 목표 점검 및 제고대책을 수립했다.

2014년에는 국제곡물시장 변동에 따른 위기단계별 범 정부 위기대응 매뉴얼을 마련했고 2015년에는 해외농 업개발 추진체계를 정비했다. 올해에는 두류 수매 확 대 추진에 따른 수매약정지침 마련, 우량농지 매입비 축, 한-러 연해주 농업개발 공동연구 MOU 체결 등을 추진했다.

맞춤형 사회안전망 구축 등 복지농어촌 건설 과제는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제도 개선 및 산재보험 수준의 농농업인 안전재해보장 제도 도입 △농어촌 도시가스 공급 확대, 마을 공동급식시설과 도우미 지원 확대 △ 공중보건의료 인프라 확충 및 농어촌 리모델링 특별법 제정 등 체계적인 지역 개발 △색깔있는 마을 및 농촌 발전의 핵심인력인 현장활동가 육성 등이 세부추진 내 용이다. 모든 사업이 문제가 있지는 않겠으나 현 정부가 대대 적으로 추진했던 ‘귀농귀촌 활성화’ 사업만 놓고 봐도 ‘실적부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원사업 예산은 2012년 40억 4000만원에서 2013년 185억원, 2014년 197억원, 2015년 209억원, 올해 239억7000만원으로 4년새 6배 가량 늘어났다.

하지만 전체 귀농가구 중 30~40 대 귀농가구는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귀농가구는 1 만1959가구로 2012년 1만1220가구 대비 6.6% 증가 했으나 30대 이하 귀농가구는 2012년 1292가구에 서 2015년 1150가구로 11.1% 감소했고 40대 이하 귀 농가구는 2012년 2766가구에서 2015년 2395가구로 13.5% 줄었다. 농식품부는 준비부족으로 인한 정착 실패, 지역주민과 갈등, 충분한 정책자금 지원 미비, 지원 조건 등을 요인으로 지목하지만 젊은층을 타겟으로 한 귀농귀촌 취지가 오히려 퇴색된 것은 분명 ‘정책 실패’ 라는 지적이다. 농축산기계와 관련, 당초 대통령 공약은 농기계임 대사업소를 2015년까지 400개 이상 확충키로 했으나 2015년 현재 379개소로 목표치에 미달된 상태다. 가격 표시제나 여성친화형 농기계사업도 현 정부 들어 추진 됐으나 의견수렴 등 준비 단계없이 갑작스레 추진돼 진 통을 겪고 있다. 개별 사업들의 실적 보다 더 큰 문제는 정책 자체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한 정책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 이후 정책추진에 애 로사항이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특히 당초 정책입안 을 전문가들이 한 것인지 의심스럽게 됐고 누군가의 이 익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하는 신뢰성·공정성·투명성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선태규  midas0718@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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