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소파에 잠들어 있는 모 부장을 흔들어 깨웠지만 깊이 잠들어 있어 아무래도 술이 어느 정도 깰 때까지는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밤이 깊어 여종업원도 퇴근을 하고, 그녀와 나는 쑥스럽게 마주보고 앉아 홀짝홀짝 술잔만 비우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지켜지는 불문율 중의 하나가 서로의 과거사를 묻지 않는 것이 예의다. 특히 남녀 간에 속마음을 터 넣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의 과거사를 고백한다거나 상대방의 과거지사를 알고 있게 된다면, 이는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며 이미 부담스러운 인정에 이끌리기에 경계하는 뜻이리라.

그런데 그녀와 마주앉아 술을 나누다보니, 어느덧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말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모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 상사와 결혼한 이야기, 아이가 하나 있었지만 사고로 잃고, 고부간의 갈등과 가정불화로 이혼한 이야기, 커피숍을 꾸려가다 남자를 잘못만나 사기를 당한 이야기 등...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지만, 대화의 당사자는 늘 감동하기 마련인 것이 개인의 인생여정이다. 이미 늦어버린 일이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의 금기를 어기고 개인적인 연민을 물씬 느끼고 있었다. 내일 삼수갑산을 갈망정 지금 당장은 충심어린 걱정과 애정으로 서로를 위했다. 나 또한 가끔 낚시를 다니는 이야기, 조금 과장된 어린시절의 이야기와 취미로 그림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 지금 생각해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감상에 젖어들고 있었다. 물론 그녀와 내가 불륜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애써 부인하고 있었지만, 왠지 그녀와 나만의 은밀한 비밀이 하나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마음 한 편은 다소나마 가슴 설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술도 많이 취했고, 새벽은 깊어 가는데 아쉬운 자리였지만 그만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아직 잠들어 있는 모 부장도 깨워서 귀가를 시켜야 했고. 그녀는 이야기 도중 내가 가끔 낚시를 다닌다고 하니 청을 하나 해왔다. 자기를 데리고 한번 낚시를 갈수 없겠느냐는 부탁이었지만... 굳이 거절할 명분도 없는 것이 낚시 아닌가? 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애써 태연하게 승낙을 하긴 했지만, 알 수 없는 동요가 머릿속을 온통 어지럽히고 있었다.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기로 하고 그곳을 나왔다. 모 부장은 어쩔 수 없이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귀가를 하는데... 이율배반적인 상념에 술이 모두 깨어버린 느낌이었다.

'술이 깨는구나...깨!'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깊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후회도 되긴 했지만, 말 그대로 낚시만 같이 가는 것인데... 뭐가 어쩌랴 하는 자기위안에 의지하며...

한주일 내내 그런 묘한 기분이 계속되었다. 아내보기 민망해 몇 번을 취소해야겠다고 다짐했다가도... 결국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토요일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 To be continued >

정상진  jsj1234@alnews.co.kr

<저작권자 © 농축산기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