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은행사업 취지 벗어나 농협 수익사업으로 변질
최저가입찰제 해소 위해 농기계가격거품 해결이 우선

농협의 최저입찰제 논란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일선농협에서 농민에게 공급하는 농기계가격이 대리점이 본사로부터 공급받는 원가수준이다 보니 대리점의 마진확보는 요원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급기야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 전국 농기계대리점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유통조합까지 결성해 공동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농협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또한 농협의 입찰에 의지해야 그나마 시중농협을 통한 공급이라도 해볼 수 있는 처지의 공급업체는 농협의 눈치를 살피느라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 농협의 농기계 최저입찰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당장의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공급업체의 공급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악순환은 반복될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타계하기 위해서는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 듯 이해당사자 간의 역학관계를 재조명하고, 각자 본연의 사업과 역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협의 농기계 최저가입찰제가 불러온 폐해를 따져보기 전에 그 배경과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이해당사자 간의 역학관계를 통해 최저가입찰제를 해소할 수 있는 단초를 살펴본다.

일선농협의 할인판매에 맞서 마진을 포기하고 원가 이하의 할인율을 내걸고 농협 임대농기계보다 더 싸게 판다고 내건 지역대리점의 현수막(자료사진으로 기사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 농기계은행사업의 태동

농협의 농기계은행사업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선공약에 따른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건의로 추진됐다. 농협의 순이익이 1조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이익을 농민에게 환원하는 차원에서, 농가의 농기계구입에 따른 부채경감과 고령화 문제를 해소해 보자는 취지였다.

농협은 최초 1조원의 사업비를 투입해서 5개년 계획으로 사업안을 마련했다. 농민의 중고농기계를 대신 구입해주고 매년 일정량의 임대료를 받는 조건으로 설계해, 최종적으로는 농협이 10%를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당초 1조원의 환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업구조였다. 그럼에도 사업지속성을 위해서는 일정기간의 운전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러한 설계안이 설득력을 얻었다.

◇ 농협 수익사업으로의 변질

그러나 농협의 생각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경제사업부문에서는 자구책 마련을 위한 수익사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농기계은행사업 2년차인 2009년 말부터 농작업대행을 위한 책임운영자에게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신품농기계를 공급받기 위해 공급업체와 접촉을 벌인 농협은 2010년 4월, 국제로부터는 콤바인을, LS로부터는 트랙터를 수의시담형식으로 낮은 가격에 공급받게 됐다. 이것이 신호탄이 됐다. 당초 낮은 가격의 납품을 요구하는 농협의 제안을 고사하던 종합형업체들은 그 이후 경쟁적으로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하길 희망했다. 이에 고무된 농협은 2011년부터 최저가입찰방식으로 전환하고, 충분히 수익사업이 된다는 판단하에 농기계은행사업 규모를 당초 1조원에서 1조1000원으로 늘리는 선심성(?) 사업확대로 이어지게 됐다. 급기야 농협은 농기계은행사업뿐만 아니라 계통사업 물량에 대해서도 매취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최저가입찰 수준으로 공급물량을 늘려나갔다. 농협은 시중가보다 약 20~55%까지 저렴하게 농기계를 공급받게 됨에 따라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의 충분한 마진을 확보하면서도 대리점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에 농기계를 농민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됐고, 그로 인한 시장점유율 상승과 지배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거두게 됐다. 농기계은행사업 시행초기인 2009년의 농협의 시장점유율은 14.7%에 불과했지만 2012년에는 17.5%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26%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표참조)

◇ 공급업체의 자충수

경쟁적으로 최저가입찰에 뛰어든 공급업체들도 처음부터 이러한 문제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당초에는 농협의 낮은 가격을 번번이 외면하며 사태를 관망하다 LS엠트론의 계약과 함께 경쟁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으로,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공장가동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무서운 위기상황이기 때문에 이윤이 적더라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거대자본을 가지고 있는 농협과의 채권은 바로 현금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금유동성 측면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로 인해 공급업체들은 경쟁사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일선대리점을 통한 농협과의 경쟁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일선대리점의 매출이 줄어드는 악순환 속에서도 당장은 농협에 대량공급함에 따른 현금확보와 공장가동이라는 단맛을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을 타계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공급업체는 잦은 모델변경을 통해 농기계가격을 인상을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거품을 조장하면서 결국은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을 떨어뜨려 국산농기계의 경쟁력 약화를 불어오는 단초가 됐다.

◇ 본연의 역할의 찾는 노력필요

농협이 농협의 이익을 포기하고 공급업체와 대리점의 이익을 위해서 기득권을 포기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농협도 엄연한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장논리에 따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즉 농협이 농기계 유통사업을 통한 이익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굳이 대리점과의 가격경쟁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일선대리점의 농기계 유통구조는 공급업체→대리점→농민의 2단계다. 반면 농협은 공급업체→농협중앙회→지역농협→농민의 3단계를 거치도록 되어있어 정상적인 유통단계라면 농협이 대리점과의 가격경쟁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이 당연한 논리다. 또한 농협입장에서도 적정마진이 보장되지 않으면 무리해서 유통시장에 뛰어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농협이 개인사업자인 대리점의 도움없이 주도적으로 사후관리봉사와 대민서비스를 해결해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논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기계 가격거품이 걷혀야 한다. 정부가 농협문제나 수입농기계의 시장점유율확대 보다 가격거품을 먼저 잡으려고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격이 투명해지고 합리적인 마진이 전제된다면 농협의 최저가입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농협 또한 당초 농기계은행사업을 추진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농가의 부채경감과 고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환원사업으로 추진했던 것인 만큼 본연의 취지에 맞도록 중고농기계 인수와 농작업대행에 좀더 사업비중을 높여야 한다. 또한 농민을 위한다면 농업의 후방산업인 농기계산업의 자생력을 높이는데 일정 부분의 기여도 필요한 시점이다.

정상진  jsj1234@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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