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업, 인위적 구조조정 불가능…시장논리 따른 체질개선으로 경쟁력 키워야

일본産 수입제품의 시장잠식…통상마찰 피해 융자지원액 상한제로 풀어야

(사)한국농업기계학회는 우리 농산업분야 산학연 협동의 구심점으로, 또한 학자의 양심으로 중립적 입장에서 농기계산업의 정책방향을 제시해 오고 있다. 1976년 설립된 학회는 농·임·축·수산업 생산과 농식품가공·바이오시스템의 공정과 관련된 기계·장치·설비·센서·소프트웨어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학문연구를 통해 우리 농산업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농축산기계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본지 창간을 맞아 학계의 좌장으로 학회를 대표하고 있는 최창현 학회장과 본지 편집국장이 지난달 자리를 함께하고 우리 농산업분야 현안문제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

정상진 편집국장: 최근 종합형업체간의 M&A가 성사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업계 3위인 동양물산기업(주)이 업계 4위인 국제종합기계(주)를 인수하면서 대동공업(주)과 LS엠트론(주)을 제치고 일약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이를 우리 산업계의 구조조정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문제는 인수합병한 양사의 대리점 역할과 생존권 확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최창현 학회장: 우리 산업계규모로 볼 때 종합형업체는 2개가 적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야 일본과의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경쟁이 가능하고, 품질기술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산업계의 구조조정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세부내용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업계의 어느 누구도 스스로 구조조정 하겠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구조조정은 찬성하지만 나를 중심으로 통합하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래서 구조조정이 힘들다. 

대리점 문제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0년 전에도 대리점 과밀로 인한 과당경쟁이 문제가 되어 대리점 수를 줄이고 지역별 통합대리점 운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다 죽겠다던 10년 전의 대리점이 아직도 살아남아서 멀쩡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유는 유통업이 이익이 나기 때문이다. 외부충격에 의한 해결방법이 나오지 않는 이상 현재의 상태가 당분간은 유지될 것으로 본다. 

정 국장: 시장포화에 이른 생산업체든 대리점이든 자유시장 경제체제하에서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도태에 의한 구조조정이 이뤄지기까지 업체 간의 극심한 출혈경쟁으로 인해 체질개선은커녕 스스로의 품질경쟁력도 갖추지 못할 만큼 자립기반이 허약해진다면 외국기업에 우리시장을 무혈입성으로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1997년 IMF 시기처럼 정부가 나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농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농산업분야 현안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최창현 (사)한국농업기계학회장

최 학회장: IMF 시기는 국가전체가 부도가 나는 절체절명의 국가재난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농식품부는 절대 제조업체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농민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가 아니라면 농식품부가 나서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체의 일이니 그나마 산자부가 나서서 어느 정도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시장규모가 너무 작아서 손댈만한 개재가 안 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업체일이니 그냥 가만히 놔두고 없어지면 그때 가서 검토를 시작할 것이다. 업체가 없어지면 혹시나 농민에게 무슨 피해가 가지 않는지의 관점에서 검토를 시작해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정 국장: 인위적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일본산 수입제품의 시장잠식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지난해 말 융자율차등적용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통상마찰 우려로 백지화했다. 이대로 두면 결국 일본산 수입제품이 시장을 잠식해 국산제품의 존립기반이 위태로워진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시장개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산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의 역할 아닌가. 최근에는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 국산업체 대리점들이 연대해서 농기계유통조합을 결성해 공동 대응해 나갈 예정으로 있다.

최 학회장: 일본산 수입제품에 의한 시장잠식으로 국산업체 대리점이 다 죽는다고 하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품질면에서 국산제품 품질력이 예전과 달리 상당수준 올라와 있고, 수입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지가 될 것이다. 오히려 일본산 수입제품의 경우에는 시장점유율이 아직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마케팅 측면에서 낮은 가격정책을 고수하다가 시장점유율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가격을 올려도 품질이 좋으면 농민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다. 그럴 경우, 정부가 당연히 나서겠지만 국산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지원에 그칠 것이다. 왜냐하면 농민이 자의적으로 수입산을 구입하는데 이를 못하게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 국장: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통상마찰을 피해가면서도 우리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차피 자국민의 세금을 집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국산업체와 수입업체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수입업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산 수입제품 중에서 선호도가 높은 기종의 규격기준을 강화해 국산과 수입산을 동일하게 규제한다면 수입업체에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최 학회장: 정부가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물론 그렇게라도 하겠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다. 농민이 수입산을 구입하는데 따른 불편을 무시하고 정부가 나서서 산업체보호를 우선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안전이나 환경 등의 문제가 있다면 제동을 걸 수 있다. 폭스바겐 자동차의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표면적으로는 인증서류조작으로 인한 판매금지지만 그 이면에는 국산자동차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국가는 명분에서 밀리기 때문에 통상마찰로 몰아갈 수 없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다른 나라도 자국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있지만 대놓고 국산과 수입산을 차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수입품이래도 자국민이 원하면 정부가 나서서 쓰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결국 자국민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정부도 수입산을 막긴 막아야 한다고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다만 기본개념이 수입을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산업체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데 있다. 아마 국산업체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수입산을 막아주면 국내업체가 그동안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논리고, 정부는 수입산을 대놓고 막을 수 없으니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라는 논리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절대 업체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 농민이 정책마련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학회도 마찬가지다. 업체를 위한 정책제안을 할 경우에도 농민에게 도움 되지 않으면 절대 채택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난해 융자율 차등적용 방침을 철회하지 말고 밀어붙였어야 했다. 통상마찰 우려가 없게 규제대상 품목에 국산제품도 포함시키는 형태로 해서 지원율이 아닌 지원액 상한제로 수정해 밀어붙였다면 좀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정 국장: 가격표시제가 실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원가자료 제출에 대해서는 업체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기계가격 투명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제도시행의 취지와 순기능은 이해하면서도 불필요한 규제만 늘어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 학회장: 이미 시장에서 농기계가격의 신뢰성은 무너진 상태다. 정부입장에서는 농기계가격을 기준으로 국민의 세금을 융자지원해 주고 있는데 가격이 들쭉날쭉하니 예산집행을 철저히 하기 위해 칼을 빼어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부예산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기준가격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가격이 20~30% 이상 차이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반값공급까지 이뤄지고 있으니 정부예산의 투명한 집행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가격구성요인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매년 쌀 수매가를 결정해 정부예산을 집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융자지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농기계임대사업, 조사료 생산기반 확충사업, 신기술 보급사업 등 정부에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들은 모두 표준가격이 있어야만 한다.

업체입장에서도 정부가 농기계 기준가격만을 알기 위해 제조원가보고서를 받는 것이라면 크게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다만 세무자료로 활용된다면 업체는 그날로 망하는 것이다. 각종 마진에 대한 세금폭탄을 맞을 것이고 대리점 마진부분까지 모두 세금 떼일 소지가 많으니 사업을 유지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과거 농기계 등록제 추진을 업체들이 반대한 것도 같은 이유다. 

정 국장: 원가자료제출에 대한 국내업체와 수입업체의 반응에는 온도차가 있다. 국내업체의 경우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원가자료가 노출돼 있는 만큼 수입업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불리할 것이 없다는 반응이고, 수입업체의 경우에는 영업비밀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행정소송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통상마찰에 대한 우려는 없나.

최창현 (사)한국농업기계학회장과 정상진 본지 편집국장이 우리 농산업분야 현안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모습.

최 학회장: 지난해 추진했던 융자율 차등적용과는 달리 통상마찰 요인은 없을 것으로 본다. 제도적용의 취지가 융자금을 지원해 주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집행하는 일이고, 국내업체와 수입업체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형평성 면에서 차등을 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기준이라도 국내업체는 원가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수입업체의 경우에는 재료비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비, 기술료, 특허료, 외주가공비 등의 직접경비와 간접경비, 수입관세까지 모두 노출되기 때문에 부담이 많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원가조사보고서 제출을 통한 가격표시제 도입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은 농기계의 기준가격이기 때문에 업체로부터 직접재료비와 간접재료비가 포함된 재료원가만을 제출받아도 기준가격을 충분히 책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원가를 제출하라고 하면 원가변동 요인에 따라 매년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업체 입장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 국장: 그러나 다소의 무리가 따르더라도 이번 기회에 농기계 가격거품은 바로잡고 갔으면 좋겠다. 농기계가격이 신뢰를 잃으니 세간에는 농기계산업과 관련 있는 사람들까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 농기계 보조비리 의혹이 생길 때마다 농업전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격거품 제공자인 민간업체에 1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기폭제가 된 것은 농협의 농기계은행사업과 관련한 입찰제도라고 볼 수 있다. 농기계 유통시장의 안정성은 무시하고 최저가 입찰방식만을 고수하다 보니 가격거품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심지어 55% 할인된 가격으로 낙찰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니 누가 농기계가격을 믿겠나. 명분상으로는 농민에게 싼값으로 농기계를 공급한다고 하지만 농협의 수익을 극대화 하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농협의 최저가 입찰방식이 지속된다면 결국 농기계의 품질저하로 이어져 우리 농업의 경쟁력이 그만큼 뒤처지게 될 것이다. 적정 품질유지와 유통시장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예정가격 입찰방식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최 학회장: 농협의 최저가 입찰방식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당장 정부가 관여할 수가 없다. 최저가를 고수하다보면 원가절감이 불가피한 업체에서는 
제품의 성능을 제외한 다른 부가적인 기능들부터 없앨 것이다. 그러다 결국은 제품의 성능저하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정부에서는 품질저하로 인한 생산성감소나 취급상의 안전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개입하려 하겠지만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시장상황이기 때문에 농협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집고 넘어가야 한다.

정 국장: 농협의 농기계 은행사업과는 별개로 지자체 기술센터의 농기계임대사업이 확대되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농기계 임대사업장만 늘려나가고 있지, 유지관리 지원이나 운영은 제대로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최근 여성친화형 농기계를 의무적 임대기종으로 공급량을 늘리도록 강제하면서 여러 부작용도 낳고 있다.

최 학회장: 농기계임대사업은 농민에게 꼭 필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임대사업의 지속유지를 위해 임대료의 현실화가 필요한데, 적은 비용으로 사용하기를 원하는 농민의 뜻과는 상충되기 때문에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보다 문제는 임대사업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들이 구입하기 곤란한 사용빈도가 낮은 기종을 임대해서 쓰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데, 대부분의 지자체는 농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농기계를 구비하는데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용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지자체와 아닌 지자체를 평가해 해당사업비를 차등 지원해야 할 것이다.

여성친화형 농기계는 개념접근부터가 말장난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여성친화형 농기계로 공급되는 제품들을 현장에서 확인하면 대부분 남성들이 쓰고 있다. 요즘 대부분의 농기계는 인체공학적 형태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동선에 맞게 조정해서 쓸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조작과 운반도 거의 스위치로 작동하지 근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별로 없다. 차라리 여성친화형 보다는 노인친화형이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친화형이라는 명분으로 예산을 확보해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규제는 안할 것이다. 굳이 논란을 일으켜 사업을 없앨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 국장: 농기계산업을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그러나 논의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실행계획이나 주도할 기관의 실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 학회장: 컨트롤 타워가 있으면 농기계산업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누가 컨트롤 타워의 권한을 부여받고, 누가 컨트롤 타워를 운영해야 하는가를 따지면 답이 없다. 컨트롤 타워의 지속관리를 위해서는 완벽한 민간단체가 맡아야 하는데, 권한을 부여받으려면 정부가 들어와야 한다. 두 개의 주체가 유기적으로 상시 공존한다는 것은 현재의 행정시스템 상에서 불가능하다. 컨트롤 타워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만들어 운용하느냐에 대한 플랜이 나오지 않는 한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보다는 오히려 산학연 협의체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빠를 수 있다. 

선태규  midas0718@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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