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양적한계 도달···증산정책은 넌센스!

◆시대변화 따른 농정의 변화

그동안 우리나라 농정의 근간은 농업생산성의 증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업생산성의 증대는 농가소득의 증대로 이어지고, 이로 말미암아 농업 또는 농촌의 발전이 수반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농정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1970~1980년대에는 쌀 증산과 관리가 농정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농정의 근간에 변화가 나타났고, 우리는 이것을 관련 기관의 역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임무에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농산물에 대한 품질관리가 들어있을 뿐, 생산성의 증대라는 표현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식량작물 관련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국립식량과학원의 비전과 추진전략에서도 생산성의 증대와 관련된 표현은 사라졌다. 대신에 기후변화 대응 맞춤형 품종 개발, 디지털 농업 및 지속가능한 농업기술 개발, 식량작물의 가치 향상을 위한 식·의약 신소재 개발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두말할 나위가 없이 이러한 변화는 쌀 소비량의 감소에 따른 결과로서 소비 패턴의 변화가 관련 기관의 역할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농산물 소비량의 변화와 한계

사실 소비량의 감소에 따른 이러한 변화는 여러 해 전부터 예견되었다. 그런데 쌀 소비량의 감소에 따른 관련 기관의 역할 변화가 국립식량과학원에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판단은 지난 20년간 우리 국민의 쌀, 원예산물, 축산물 및 수산물 소비량의 변화로부터 기인한다.

2000~2020년에 1인당 쌀, 원예산물, 축산물 및 수산물 소비량의 합계는 432~467㎏으로 연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없었다(표1 참조). 이 시기에 2020년도의 1인당 소비량은 467.3㎏으로서, 2000년의 445.8㎏에 비해서 5% 정도 늘어났다.

2020년의 채소 및 과일 소비량은 2000년에 비해서 약 10~12% 줄어들었다.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2020년의 1인당 소비량은 57.7㎏이었다. 한편 축산물 소비량은 꾸준하게 증가하였다. 2020년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4.9㎏으로서 2000년에 비해서 약 1.7배 늘어났고, 우유 소비량은 1.4배 늘어났다. 수산물 소비량은 2000년에 비해서 약 1.9배 증가하였다. 결과적으로 쌀과 원예작물의 소비량은 줄어드는 대신에, 축산물과 수산물 소비량은 늘어났다.

상기 표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 향후 쌀 소비량은 조금 더 줄어들 것이다. 농업 구조가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의 1인당 쌀 소비량이 2010년 59.5㎏, 2015년 54.6㎏, 2020년 54.3㎏이었음을 고려한다면 국내 1인당 쌀 소비량은 조금 더 줄어들 수 있다.

둘째, 원예산물 소비량은 품목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현재 상태를 유지하거나 다소 줄어들 것이다. 한편, 축산물과 수산물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셋째, 향후 1인당 전체 소비량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즉, 전체 소비량이 줄어들지 않겠지만, 늘어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1인당 소비량이 양적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때문에 어느 부문의 소비량이 늘어나면, 다른 부문의 소비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예컨대, 육류 소비량이 증가되면 그 만큼 쌀 또는 원예산물의 소비량은 감소될 것이다.

이러한 소비 추세에 더하여 총인구는 감소세로 전환되었고, 1인 가구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전체 소비량은 늘어나기 쉽지 않고, 오히려 고품질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더욱 커질 것이다. 한편 국내 농산물의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수입농산물에 눈을 돌릴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자 또는 생산자 단체는 농산물의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 대신에 소비자의 수요, 즉 품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품목별로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생산된 농산물을 모두 소비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A라는 과채류의 생산량이 늘어나면 소비자들이 A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과채류 B 또는 C를 추가로 소비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소비자들의 1인당 소비량은 연간 460㎏ 전후로서 이미 소비의 양적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한 품목의 소비가 늘어나면 다른 품목의 소비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혁신밸리의 생산성 제고는 시대착오적 발상

농림축산식품부는 4000억원 이상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전국 4곳에 스마트팜 혁신밸리(이하 혁신밸리)를 조성하였다. 그런데 일부 혁신밸리의 비전에 글로벌 수준의 생산성 제고 또는 생산성 30% 제고 등의 표현이 들어있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스마트농업 기술의 적용으로 시설원예 재배 품목의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 그렇다 치더라도 생산성의 제고를 혁신밸리의 비전으로 설정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재배면적이 유지되는 가운데 생산성이 향상되면 생산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농업 기술과 스마트 기술의 접목에 따른 기술 혁신으로 국내 농업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기여해야 할 혁신밸리의 사업 목표에 생산성의 제고가 들어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느낌마저 준다. 더구나 원예산물을 포함한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양적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되는 시기에 말이다.

거듭 언급하지만 품목별로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지금은 생산성의 제고가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반대로 농산물의 품질 향상이 더욱 요구되는 시기이다. 소비자들은 보다 우수한 품질을 요구하고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산성의 제고로서는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 고품질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소비는 더욱 줄어들고, 심하면 국내 농산물이 외면당할 수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위할 뿐만 아니라, 국내 농업의 당면 과제를 극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품질 향상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품종, 생산 기술, 수확 후 관리 방법, 기후 이상 등으로 인해서 농산물의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과 노력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소비 추세 고려한 농산물 생산정책 필요

무엇보다 관계 당국은 1인당 소비량의 한계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다음으로 국민들의 식량작물, 원예산물, 축산물 및 수산물 소비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어갈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단일 정책이나 특정 기관의 역할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진행 상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진행 상황을 그대로 놓아두면 소비량이 줄어드는 부문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이제는 쌀, 원예 또는 축산 분야의 품질 향상을 위한 관련 기관의 개별적인 접근을 넘어서야 한다. 관계 당국에서는 현재의 소비 추세를 고려하되 국민들의 고품질 수요 충족, 안정적인 식생활 유지 및 영양의 균형 차원에서 종합적인 접근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이 정책에 담겨야 한다. 양보다 질(No more, much better)이 더욱 요구되는 시기에, 관계 당국은 변화된 상황을 충분하게 고려하여 보다 정교한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국내 농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확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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