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일관성·밭농업 기계개발 인프라 필요”

정부차원 기반정비 종합계획, 산업체 판로확보 선행돼야

농업 기계화 진척이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5년 전만 해도 2016년까지 밭농업 기계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었지만 현재 기계화율은 58%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최근 제8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을 통해 2021년까지 밭농업 기계화율을 좀 더 현실적인 65%로 하향조정했 음에도 과연 목표달성을 이뤄낼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과연 밭농업 기계화의 길은 요원하기만 한 걸까. 밭농업 기계화촉진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점검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없는지 살펴본다. <편집자註>

점질토의 마늘밭에서 땅속작물수확기를 통해 마늘을 수확하고 있는 모습. 토양의 점성이 높아 마늘 뿌리에 흙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회전날이 달린 수확기를 통해 뿌리를 절단하면서 수확해야 하지만 개발비용 부담 걱정으로 생산업체가 나서지 않아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충남 태안의 마늘밭 수확장면.

밭농업 기계화 추진실태 밭농업의 기계화에 대한 논의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당시 벼농사 기계화율이 80%에 이르렀기 때문에 다음 기계화의 대상은 자연히 밭농업이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 그러나 밭농업 기계화 정책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25년간 밭농업 기계화율은 40%에서 55% 수준으로 겨우 15% 증가했을 뿐이다. 

각종 정책추진에도 불구하고 밭농업 기계화가 부진했던 것은 밭농업의 특성상 지역별, 작물별로 재배양식이 상이하고, 논농사에 비해 복잡한 기술적 요구가 다양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정책의 일관성 부족과 밭농업 농기계개발을 위한 인프라 조성이 안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2012년 제7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을 통해 농촌고령화와 일손부족, 한·중FTA 대응을 이유로 2010년 기준 46%인 밭농업 기계화율을 2016년에는 70%까지 높인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주요 밭작물에 대해 일관기계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마늘·양파·고추 품목에 대해 5년간 각각 96억원, 684억원, 203억원을 책정해 주산단지를 중심으로 지원하고, 2003년부터 추진한 농기계임대사업소를 매년 30개씩 늘려 2015년까지 35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밭농업기계 핵심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을 위해 2016년 연구기관 공모를 통해 경북대 학교에 10년간 총 245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밭농 업기계개발연구센터를 지정운영하기로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 밭농업 기계 화율은 57%에 불과해 정부는 올해 마련한 제8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을 통해 2021년까지 기계화율 을 65% 높이고 농기계임대사업소를 560개까지 늘 린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게 됐다. 특히 기계화 율 5%에 머물고 있는 파종·이식기계는 2021년까지 15%, 기계화율이 13.3%인 수확기계는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 밭농업 기계화의 걸림돌 

우리나라 밭농업은 경작 규모가 작고, 경지가 분산돼 있으며, 작목과 재배양식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경지의 위치도 평야지보다는 중산간지, 경사 지가 많고 진입로를 확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기계화를 위해서는 작물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기종의 농기계가 필요하지만 수요가 많지 않고 연중 사용시간도 짧아 밭농업기계를 개발해야 하는 생산업체 입장에서는 다품종 소량생산에 따른 개발비용 회수가 어려워 생산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밭농가의 90%에 이르는 대다수의 농가는 0.3㏊ 미만의 소규모 영세농이기 때문에 고가의 밭농업 기계를 구입할 여력이 없어 기계화를 포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시군별로 농기계임대사업소가 잘 갖춰져 있기는 하지만 고령농업인의 경우 재배작 물에 적합한 밭농업기계를 손쉽게 임대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지며, 적기영농에 필요한 농기계는 수요가 일시에 몰려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특히 지역별로 재배양식이 다르고 토양의 물성이 다르기 때문에 범용의 밭농업기계가 현지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같은 마늘수확기의 경우에도 사질토와 점질토의 물성에 따라 기계적용에 어려움이 있으며, 건기와 우기에 따른 흙털림과 작물손상 정 도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특성과 토성에 따른 적합 한 밭농업기계 개발이 요구되어지기도 한다.

◇ 기반정비 인프라 조성 필요

우리나라 전체 밭면적은 74만8000㏊로 그중에서 기계작업이 원활한 경사도 7도 미만의 밭은 40%에 불과하다. 정부는 주산단지 및 집단화된 밭을 대상으로 밭기반 정비사업을 추진해 1994~2013년까지 20년 동안 약 10만1000㏊를 경지정리했으며, 현재까지의 밭 경지정리율은 11만㏊로 전체 밭면적의 15%에 불과한 수준이다. 경지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대다수의 밭은 제한된 진입로 포장정비로 대형농기계를 활용하기 곤란하고, 진입 도로 이외의 보조경작로가 정비되지 않아 기계진입이 곤란한 맹지가 많이 존재한다. 

밭기반 정비는 경작로와 관개용수원 개발을 주축으로 관개수로, 구획정리 등을 적절하게 배합해 밭의 생산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기반정비에는 환경적인 특성과 접근성 등에 따라 천문학적인 재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좀처럼 경지정리율을 높이기 어렵다. 또한 밭농업 기계화가 가능한 밭기반정비의 수준과 범위가 불명확하고, 기계화를 위한 체계적인 기반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단순히 용수개발과 진입로 포장 등의 기초적인 기반정비만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지자체의 밭기반 정비사업은 지자체 주도의 포괄보조사업으로 광특회계 예산지원체계로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 우에는 밭기반 정비사업에 대한 관심이 낮고 시행 사업 평균단가가 하락해 사업수준이 저하되는 문제점이 있다. 체계적인 기반정비 보다는 민원해소 차원의 단순정비형 사업이 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 밭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인 기 반정비가 이뤄지고 있지 않아 추진실적이 미미한 상태로 볼 수 있다. 

밭농업 기반정비에 있어서 우선 중요한 것은 기존의 밭기반 정비사업의 확대와 수준제고다. 밭에 대한 체계적인 기반정비를 위해서는 밭의 특성을 반영한 기계화 가능기반으로의 경지정리, 농로확장, 보조경작로 개설 등을 고려한 밭기반정비의 수준과 범위, 예산지원체계 개선 및 안정적인 사업비 마련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논, 밭 지목 구분 없이 통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지목관리 방식에 대한 재검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밭농업 기반정비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의 밭기반정비 대상지구 선정기준인 집단화규모를 하향해 사업 대상지를 어디까지 확대·재조정할 것인지, 밭기반 정비사업의 수준제고와 관련해 기존의 진입로 포장 정비, 경지정리, 용수개발, 기계화를 위한 밭경지정리 보완, 고랭지 급경사지에 대한 경지정리 시의 토사유실 방지대책, 일정규모 이상의 단지화, 휴경방지 차원의 영농여건 조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정비대상 범위설정을 위한 기초자료 정비 는 물론 자원조사 등을 통한 농지범용화사업의 중 장기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 정부의 정책의지가 중요 

밭농업 기계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밭농업 전용 기계 개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전체 밭면 적의 85%가 경지정리가 이뤄지지 않은 척박한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는 기계화율을 좀처럼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제8차 농업기계화 기본 계획을 통해 기반정비 예산으로 매년 700억원씩 5년간 3500억원을 책정해 놓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천문학적인 밭기반 정비사업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충분한 재원마련이 어렵다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선별적인 기반정비사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자체 주도의 사업추진보다는 예산지원체계를 광특회계에서 농특회계로 전환해 중앙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기반정비 추진이 요구된다. 만일 이러한 전환이 어렵다면 종합계획에 따른 지자체의 체계적인 기반정비 추진을 유도하기 위한 보조 차등지원 등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기반정비와는 별개로 재배양식표준화 및 밭농업 전용기계의 개발환경도 중요하다. 

주산지를 중심으로 한 집단화된 밭의 경우에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대형 밭농업기계 개발이 이뤄져야 하며, 밭농가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소규모 분산농가에 대한 소형 밭농업기계의 개발 등 투-트랙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농기계 제조업체가 대부분 영세하고 규모가 작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농기계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므로 정부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국가 연구기관이 필요한 농기계를 개발하고 그 기술을 제조업체에 이전하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적정생산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 판로를 담보해 줘야 하며, 생산업체가 밭농업 전용기계를 개발 할 경우에는 심사를 통해 개발비용을 담보할 수 있는 상품화 후속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둬야 한다. 이러한 실질적인 지원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밭농 업 기계화촉진은 한낱 허울 좋은 메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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