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지속 가능한 농업기계화의 길

우리 농업이 농업기계화의 길로 들어선지 45년이 되었다. 그동안 눈부신 발전도 있었지만 우리 농촌은 예나 지금이나 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업의 전후방 산업인 농기계산업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 최근 몇 년간 이어져 온 장기불황으로 신음하고 있다. 높아진 원자재 가격, 고금리, 인건비 상승 등 경영비가 증가하고 있고, 수출부진과 내수부진의 장기화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기계화는 우리 농업이 지속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농업기계화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나가는 것이 좋은지 정상진 본지 발행인과 한국농업기계학회를 이끌고 있는 김혁주 학회장과의 대담을 통해 그 해법에 대해 고민해 본다.

“밭농업기계 확대 위한 공용 플랫폼 마련해야”
농기계산업 기반 안정 위해 정부주도 농기계수출 확대전략 필요
대기업 중심 군단체제로 해외시장 개척해야···중소업체 협력지원

정상진 발행인 : 최근 몇 년간 이어져 온 경기침체의 여파로 우리 농업은 물론 농기계산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가의 경영비 가중으로 인한 소득감소는 물론이고 농업의 전후방 산업인 농기계산업의 장기불황도 심상치가 않다. 특히 생산업체 입장에서는 고정비용 지출은 늘어나는데 경기침체로 인한 수출감소와 내수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내수진작을 위한 지원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지만 현 정부 재정상황을 볼 때 기대하는 것을 무리라는 판단이다. 이미 8월말까지의 재정적자 규모만 해도 84조원를 넘어선 것으로 보도되고 있어 추가 사업확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혁주 학회장 : 재정적자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정부에서 정책기조의 대 전제를 통해 세수를 줄였기 때문에 세출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다만 농업분야에서, 특히 기계화율이 더딘 밭농업기계화 예산은 줄일 수 없을 것이다. 재정투입 규모를 줄인다고 해도 밭농업지원사업은 그래도 추진될 것이고, 밭농업기계 보급사업은 지속해서 확산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에서 스마트농업 생산비중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에 결국 밭농업지원사업은 노지 스마트팜 지원사업으로 점차 옯겨가게 될 것이고, 그 역할은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성인 중소 밭농업기계 생산업체들이 대부분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발행인 : 노지 스마트팜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핵심적인 요소기술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회사규모가 영세하고 디지털 기술개발 능력이 떨어지는 대부분의 농기계 중소기업들이 노지 스마트기계를 생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적지 않은 개발비용을 투입해 스마트기계를 생산한다고 해도 밭농업 특성상 다품종 소량생산 위주가 될 것이기 때문에 개발비용 회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개발에 앞서 정부가 나서 수요처를 사전에 확보해 줄 수 있는 정책개발이 필요하다. 그래야 중소업체의 제품개발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

학회장 : 노지 스마트팜은 대기업 중심이 아닌 중소기업 중심으로 가는 것이 맞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구개발 재정투입도 소규모 회사들을 모아서 그곳에서 무엇인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다만 고려해야 할 것이 양파재배기계화를 하는데 이식기, 제초기, 줄기제거기, 수확기, 수집기 이런 식으로 따로 연구개발이 이뤄지는 것은 효과가 없다. 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서너 작목이라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 플랫폼을 국가에서 제공해줘야 한다. 그리고 각사에서는 기본 플랫폼에 맞춰 기술개발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즉, 공통으로 사용되는 범용적인 플랫폼은 개별 기업이 접근할 수 없는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 표준을 잡아주고, 개별 기업은 그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지역별, 토양별, 재배양식별로 제품개발이 이뤄지는 것이 중복투자를 막고 기술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발행인 : 농업기계화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단기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단기적으로는 노지 스마트팜의 확대나 공용 플랫폼 구축 등의 연구개발사업 추진이 분명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구감소, 지역소멸, 농촌인력의 고령화로 농업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5년 전부터 불어닥친 데이터농업, 정밀농업 등 디지털농업 등이 이러한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현장에 접목하기에는 요원해 보이고 그 효과마저 미미한 편이다. 농산업체 입장에서는 내수와 수출을 통해 산업생태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중장기적 전략마련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학회장 : 디지털 농업의 도입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진행돼야 하는 시대적 흐름이다. 지속 가능성이란 개념은 원래 1980년도에 나온 개념으로 1960년대 공업화를 거치면서 대기오염이 심각해진 미국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자고 도입되면서 농업분야에도 사용하게 됐다. 영농규모가 수십 ㏊의 대규모 영농을 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정밀농업 개념이 도입됐지만 영농규모가 10a, 20a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미 정밀한 농업을 펼치고 있어 미국식의 정밀농업 개념을 접목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현재는 온실농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노지쪽까지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는 판가름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농업을 생각한다면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농업에서 도입되고 있는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이란 개념은 씨앗을 파종해서 재배·수확과정과 운송·도매·소매를 거쳐 우리 식탁까지 전해지는 모든 전과정의 데이터가 전달되고 관리된다. 그것이 디지털 농업이다.

발행인 :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영농정보의 세대 간 연계성이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농업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0.5㏊ 미만의 소규모 영농이 대다수인 우리 실정에 디지털 농업을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는 것은 초가삼간의 대문을 금으로 장식하는 격이라 경제논리에 맞지 않다. 우리 농업의 규모화가 진행됨에 따라 경제성을 따져 점진적으로 도입해가는 속도조절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농산업체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미래수요를 예측해야 하고 제품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다품종 소량생산체계의 밭농업기계로는 규모화가 어려워 경쟁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국내 농기계시장의 수입산 점유율이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는 이유도 결국 우리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의 글로벌시장에서 우리 농기계산업이 살아남으려면 기술개발에 앞서 우선 규모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정된 내수시장을 벗어나 수출을 통해 규모화를 이뤄야 제품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학회장 : 우리 농산업체 구조를 살펴보면 몇몇 종합형업체와 대부분의 중소기업으로 이뤄져 있는데 우리 농산업 규모를 생각하면 탈출구는 수출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해 우리 농기계산업 전체 수출규모는 2조원 내외로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한 현대건설기계 1개 회사의 수출액이 우리 농기계산업 전체보다 9배 많다. 우리 국력과 비교했을 때 농기계산업 수출규모가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다. 우리 농기계분야는 자동차, 건설기계 등과 거의 유사한 품목들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기술이 부족해서 수출규모가 낮은 것은 아니다. 핵심은 농기계산업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자동차산업을 국가에서 투자하기 않고 내버려 뒀으면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건설기계분야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가 일본 도요다와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가의 전략적인 투자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농기계산업을 자동차나 건설기계처럼 수출 전략품목으로 육성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국력을 생각한다는 지금 농기계산업의 수출규모는 다섯 배 정도가 돼야 정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수출이 유망한 종합형업체를 집중 육성하고, 작업기 업체들이 그 뒤를 따라가는 대기업 중심의 군단체제를 이뤄야 한다.

발행인 : 결국 핵심은 정부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농기계산업을 수출주도형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수출시장 확대를 통해 수요를 확보한다면 한정된 내수시장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중소업체들도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소업체들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개발은 정부의 R&D 지원을 통해 보완해 나가면 된다.

학회장 :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중소기업 스스로도 생존력을 키울 수 있는 체질개선 노력이 있어야 한다. 즉, 제품의 지능화를 위한 관심과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예전 방식으로 주먹구구식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방식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국가에서 공통적인 기본 플랫폼을 제공한다고 하면 개별 기업들은 그에 맞춰 정밀하게 목적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고, 정부는 개별 업체들의 부족한 기술개발 능력들을 높이기 위한 R&D 지원을 점차 늘려간다면 우리 농기계업체들의 설계·제조 생산능력도 조금씩 올라가게 될 것이다.

발행인 : 농업기계화의 지속 가능성과 함께 고려해야 할 부분이 기후변화와 지역소멸이다. 점점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한다. 농기계 생산업체 입장에서도 탄소중립과 인구감소에 대비한 제품개발을 고민해야 한다.

학회장 : 지금 우리 농기계산업의 당면 현안들을 생각한다면 기후변화나 지역소멸은 좀 더 여유있을 때 논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작물의 병해 취약성과 수확량 감소 등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어 지능을 동반한 농기계의 수요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또한, 출생율 저하에 따른 대체수단으로써 농기계의 필요성도 확대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농업기계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농업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농업인구가 유입되고 농업의 지속성과 기계화가 이뤄질 수 있다. 그래서 농식품부에서 스마트농업관리사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앞으로의 농업은 소수정예들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규모화가 이뤄져야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농업관리사라는 자격증은 고소득을 보장하는 의사의 면허증처럼 메리트 있고 지적인 선망의 직업군이 될 것이다.

정상진 기자 jsj1234@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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